
기사 문장에서 관형어가 조사 ‘의’와 결합하면, 문장은 생각보다 쉽게 불안정해진다. 문법적으로는 맞아 보여도 독자가 관형어의 수식 대상을 즉각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쁜 그녀의 코’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이 문장은 ‘예쁜’이 ‘그녀’를 꾸미는지, ‘코’를 꾸미는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반면 ‘그녀의 예쁜 코’는 관형어를 꾸밈받는 말 바로 앞에 두어 의미가 분명하다.
관형어가 ‘의’로 연결된 명사구 전체를 꾸밀 때, 그 관형어가 앞말과 뒷말 가운데 어디에 걸리는지는 문맥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몰락한 제국의 해군 장교’에서는 ‘몰락한’이 ‘제국’을 꾸민다는 점이 자연스럽고, ‘시커먼 화산의 재’에서는 ‘시커먼’이 ‘재’를 꾸민다는 점이 상식적으로 읽힌다. 이런 경우에는 독해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관형어의 수식 대상이 둘 다 될 수 있을 때다. ‘성공한 철수의 아버지’라는 표현은
– 철수가 성공한 사람일 수도 있고
– 아버지가 성공한 인물일 수도 있다.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은 아니지만, 기사 문장으로는 의미가 흔들린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이런 구조는 실제 기사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미국에서 결혼한 그들 부부의 딸은 미국 땅을 밟아 보지 못했다’라는 문장은 딸이 미국에서 결혼한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 이럴 때는 수식 관계를 억지로 한 문장에 담기보다, 의미를 분리해 서술하는 편이 훨씬 정확하다.
→ 그들 부부는 미국에서 결혼했지만, 그 딸은 미국 땅을 밟아 보지 못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그의 부인은 중졸 출신이다’라는 문장은 누가 대학원을 졸업했는지 잠시 멈춰 생각하게 만든다.
→ 그는 대학원을 졸업했고, 그의 부인은 중학교를 졸업했다
기사에서 관형어 + ‘의’ 구조를 썼다면 다음 정도는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 관형어가 어디를 꾸미는지 독자가 바로 알 수 있는가
– 두 번 읽어야 의미가 잡히지는 않는가
– 문장을 나누면 오히려 더 명확해지지는 않는가
관형어는 가능하면 꾸밈받는 말 바로 앞에 두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그럼에도 의미가 갈릴 여지가 있다면, 문장을 나누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기사 문장은 간결함보다 명확함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기사 문장을 해석하며 추측하지 않는다. 관형어 하나가 문장의 신뢰도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의’ 앞뒤에서 관형어가 어디에 걸리는지는 반드시 한 번 더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